서울에서 만난 ㄲ과의 뜨밤
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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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5
1월의 칼바람이 한창이던 어느 날, 서산에 사는 ㄲ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고향은 베트남 하이즈엉이라는 그녀가 보낼 물건이 있다며 겸사겸사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마침 서울에서는 잠실역 근처에 사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생 ㄲ네 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습니다.
몇 번의 카톡이 엇갈리며 소통에 미묘한 오류가 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그날 늦은 밤에 얼굴을 보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잠시 영상 통화로 본 동생 ㄲ은 꽤 귀염상이라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밤 11시가 넘어 약속 장소인 잠실역 1번 출구 앞에 섰습니다.
추위에 몸을 떨며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여자 둘에 남자 하나, 총 세 명이 나타났습니다.
낯선 남자의 정체는 서산에 사는 ㄲ의 배다른 오빠였고, 공교롭게도 그날이 생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는 세 사람이서 단출하게 노래방에 가려던 계획에, 어쩌다 보니 제가 합류하게 된 셈이었습니다.
그래도 처음 본 오빠의 인상은 선해 보여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들의 차에 올랐습니다.
차는 동대문 4번 출구 근처에 멈춰 섰습니다.
ㄲ은 익숙하다는 듯 우리를 이끌고 골목으로 접어들었습니다.
5분쯤 걸었을까, 도착한 노래방의 문을 열자 순간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오직 베트남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 아마도 한국에 사는 베트남 사람들이 고향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찾는 그들만의 아지트인 듯했습니다.
자리에 앉자 맥주 세트와 큼직한 과일 안주가 들어왔고, 곧이어 몇 가지 안주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낯선 베트남 노래들 사이에서 저는 홀로 한국 노래를 세 곡쯤 열창하며 나름의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생일을 맞은 오빠와 ㄲ자매는 즐거워 보였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새벽 2시가 다 되어 노래방을 나왔습니다.
흥겹게 논 것치고는 11만 원이라는 저렴한 금액이 나왔습니다.
다시 차에 올라 오빠와 동생 ㄲ을 근처에 내려주고, 저는 ㄲ과 함께 저희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도착해 간단히 씻고 난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룻밤의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ㄲ은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듯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제가 먼저 방전되어 버렸습니다.
제대로 된 마무리도 못 하고 그대로 잠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새벽녘에 눈을 뜬 저는 이대로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에, 미리 준비해 둔 약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다시 시작된 전투에서 저는 마침내 시원하게 승리의 축포를 쏘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우리는 다시 잠실역 1번 출구로 향했습니다.
동생 ㄲ과 다시 만나 근처 식당에서 뜨끈한 감자탕으로 해장을 하고 각자의 길로 헤어졌습니다.
문제는 그날 저녁에 터졌습니다.
ㄲ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줘, 내 동생한테 관심 있어?" 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지만, 저는 정직함이 최선이라 믿었습니다. "응, 관심 있어." 그러자 ㄲ은 쿨한 척 "그래? 그럼 내가 슬쩍 빠져줄게"라고 답했지만, 메시지 너머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어색한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먹은 저는, 그녀를 카톡에서 차단해버렸습니다.
이후 동생 ㄲ에게 따로 연락해서 저녁을 한 번 먹은 적은 있습니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뒤 다시 만나자고 했을 때 그녀는 어려운 듯 말을 흐렸습니다.
아마도 언니ㄲ이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카톡으로 안부를 보내고 있고, 가끔 그녀에게서 이모티콘으로 답장이 오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건 아주 작은 긍정의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사는 곳은 우리 집에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끈질기게 만듭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조금 더 시간을 갖고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시작의 끝이 어디일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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