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ㄱㄹ꽁과의 첫만남 시리즈의 결말..
좌지클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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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19
모든 호구의 역사는, '내가 너의 인생을 구원해주겠다'는 오만한 착각에서 시작됩니다.
안녕하십니까.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지만, 결국 그녀가 떠난 자리에 사업체만 덩그러니 남게 된 남자, '로진클루니'입니다.
오늘은 제가 왜 다가오는 11월부터 '반주재원'이라는 낯선 길을 걷게 되었는지, 그 아이러니한 썰을 풀어볼까 합니다.
제 전 꽁친은, 아마 베트남에서도 최하위층에 속하는 아이였을 겁니다. 이혼한 양친은 일정한 직업이 없고, 엄마는 이모네 집에 빌붙어 살며 어린 동생 둘을 키웠죠. 그녀 역시 남편과 별거하며 어린 딸 하나를 책임져야 하는, 그야말로 '소녀가장'이었습니다.
그 막막한 현실을 알게 된 순간, 제 안의 '오지랍클루니'가 또 발동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이 지옥에서 구출해, 경제적으로 독립시키기 위한 거창한 계획들을 세웠죠.
* 플랜 A: 한국어 학원을 수료시켜, 고향 무이네의 리조트에 취직시킨다.
* 플랜 B: 패션 센스가 뛰어난 그녀를 위해, 작은 옷가게를 열어준다.
* 플랜 C: 한국어 학원을 수료시켜, 내 거래처 현지 법인에 꽂아준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왜냐고요?
하룻밤 붐붐의 대가로, 평범한 직장인의 반 달치 월급을 손쉽게 버는 아이에게, 꾸준히 노력해서 돈을 벌라는 제 말이 과연 들렸을까요? ㅋㅋ
애초에 게임이 안되는 싸움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내가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더 많이 주는 것.' 그리고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베트남에 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사업 확장을 준비하다 보니, 한국에서의 고정 지출과 맞물려 저 역시 경제적으로 곤궁해졌습니다.
결국 2냥짜리 금목걸이를 팔고, 주식 대부분을 처분하고, 만기 된 보험까지 해지하며 자금을 마련했죠.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널 위해 베트남에 사업을 준비 중이라, 몇 달간은 생활비를 예전처럼 주지 못할 것 같아."
결과는 어땠을까요?
네, 맞습니다. 그녀는 다른 손놈을 찾아 떠나더군요. 그녀의 입장에서는 한달만 돈을 벌지 못해도 엄마의 닥달에.. 버틸수가 없었던겁니다.
하지만 전 이미 자금이 투입된 사업을 멈출 수는 없었고, 그렇게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그녀와 헤어진 지 벌써 5개월. 이번 여행 내내, 호짬의 호텔, 그녀의 집근처 커피숍, 하노이의 식당까지… 그녀와의 추억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더군요.
다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장소에 서니 마음 한편이 시큰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물론, 다시 그녀를 만날 생각은 1도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향하는 방향과 속도가 너무나 달랐으니까요.
어쨌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덕분에 시작하게 된 이 '반주재원' 생활. 이 새로운 시작이, 부디 저를 착하고 예쁜, 새로운 꽁과의 만남으로 이끌어주기를, 소주 한잔하며 빌어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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