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도둑을 만난 경험(3)
과사랑
14
95
0
2024.12.31
"황당한 도둑을 만난 경험(2)"https://dreamofbesttravel.com/bbs/board.php?bo_table=free&wr_id=186388
에 이어 마지막인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보다는 뒤, 두 번째 이야기보다는 먼저 발생한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의 소도시를 가야 할 일이 생겨서 벨기에 브뤼셀에 내려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브뤼셀은 EU의 수도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벨기에의 수도이니 하룻밤 자면서
맥주나 한 잔하고 시내구경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른 오후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아 체크인을 한 후 시내로 나갔습니다.
여름이었지만 구름이 끼어서 덥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지도를 보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여행안내서에서
"무료로 브뤼셀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
이라는 문구를 보고 그 위치를 찾으려 했습니다.
브뤼셀에도 고층건물이 많아서 시내를 내려다 볼만한 곳은 많이 있었지만
해가 지면 야경을 볼 때 고층건물에 올라가기로 하고
우선 무료라는 말에 끌려서 낮의 브뤼셀을 볼 곳을 찾았습니다.
지도를 보고 찾은 곳은 6층 정도 되는 높지 않은 주차장 건물이었는데
각 층에 주차 공간이 최소한 100대는 세울 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그리 깔끔하지 않았고,
건물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으며,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함께 간 선배와 맨 윗층에 올라가니 엄청 넓은 공간이 완전히 비어있다시피 했습니다.
난간은 가슴높이까지 올라올 만큼 높아서 안전해 보였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양사방을 돌아다니니 아주 높지는 않지만
브뤼셀 시가가 잘 보였습니다.
"20분만 놀다 가죠!"
우리는 각자 이쪽 저쪽을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경치를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엘리베이터에서 두 명이 내려서 제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앞서 올린 두 번째 경험과 비슷하게 중동지방 출신일 가능성 60%,
아프리카 북부지역(모로코나 이집트 등) 출신일 가능성 30%, 동유럽 출신일 가능성 10%로 추정되는,
전형적인 서유럽인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한 두 명이 제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선배는 이를 발견하고 제 쪽으로 걸어왔지만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주시하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둘 중에 한 명이 police라는 표시가 있는 경찰 신분증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기 왜 올라왔나?"
관광객인데 브뤼셀 구경을 하러 왔다고 하자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외국경험이 많지 않던 시절이어서 몸을 서서히 엘리베이터쪽으로 향하면서
(그래야 이놈들이 도망치려 하면 따라잡기 쉬우니까요)
여권을 꺼내 주었습니다.
여권을 본 그 녀석은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더니 "그렇다"고 하자
왜 브뤼셀에 왔는지 물었고
(체격이 저보다 작고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데다
선배는 저보다 체격이 더 컸으므로 몸싸움으로 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네덜란드로 가야하는데 비행기에서 버스로 갈아타려고 오늘 하루 쉰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 모습을 수초간 응시한 후에
"여행 잘 하고 가라"하고는
그 옆에 서 있던 동료에게 "가자"며 걸음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약간 떨어져 있던 선배가 대화중에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몸을 옮겼으므로
두 놈이 이 선배 옆을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했습니다.
선배는 제게 다가와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었고, 내용을 이야기하자
"떨어져서 보고 있는데 여권을 꺼내길래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갔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옷이나 생김새, 태도로 보아 그놈들이 경찰이 아님은 확실했습니다.
(진짜라면 브뤼셀은 범죄자들의 천국이 될 것입니다)
저 녀석들이 왜 아무 일 없이 여권만 보고 사라졌는지에 대해 둘이 잠시 토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선배가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격리된 곳이니 뭔가 요구해도 우리가 따르지 않을 경우
강제로 끌고 갈 힘도 없고, 지갑같은 걸 훔쳐서 달리더라도 저와 선배가 엘리베이터에서 더 가깝고
가장 결정적인 건 제가 잘 따르는 마음씨 좋은 선배의 외모가
운동을 그리 잘 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옷을 입혀 놓으면 은퇴한 헤비급 선수 비슷해서 기가 죽은 게 아닌가 하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황당한 도둑을 만난 경험 세 가지를 소개했는데
동남아에서는 제가 한 번도 도둑을 만난 적이 없고
(지인이 도둑을 만난 털린 적은 한 번 있으며,
하노이에 사시는 분인데 제게 항상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곤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호의를 받은 적만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이야기는 이게 전부이고, 가까운 분들이 당한 이야기를 몇 가지 아는데
기회가 되면 그 내용도 소개하겠습니다.
모두들 무사여행하시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