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와 연인-에필로그
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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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2
네이버카페에 처음 가입한 후 (다른 카페에서는 눈팅밖에 하지 않지만)
이병은 읽을 수 없는 글을 읽기 위해 나름 열심히 활동을 했습니다.
일병게시판 글을 다 읽기 전에 상병으로 진급했고,
상병게시판 글을 다 읽기 전에 병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장교게시판의 글이 궁금해서 장교로 진급해야겠지만 능력이 안 된다"
는 글을 올리자 누구신지 기억 못하는 장교님께서
"장교게시판에는 별 게 없으므로 병장으로 충분하다"는 댓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랬는데 카페폭파사건이 일어나고 새로운 여꿈카페가 만들어지고
폭파직전만큼 맹렬하게 활동하시는 분이 많지 않아서인지
운좋게 장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들어가 본 장교게시판은 참으로 조용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MP 20만점 돌파하면서 더 이상 점수에는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장교님들만 볼 수 있다는 제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썰렁한 장교게시판에 뭐라도 채워보겠다고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아직도 현재진행중인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회원님들은 장교로 진급하시기를 기대하며,
네이버카페에는 상병게시판에 시간차를 두고 글을 올리고 있으니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올린 글이 항상 그러하듯 매운맛은 전혀 없습니다.ㅎㅎㅎ)
여기까지 에필로그의 서론입니다.
이제부터 에필로그의 본론입니다.
제 과거 연애이야기를 약간 각색한 ㄲ(병장게시판에 올린 "첫 인연을 맺은 꽁")
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될 무렵,
대학시절에 가장 친했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친구를 잃은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친구의 별세는 혼자만의 별세로 끝난 게 아니라
집안이 풍비박산나다시피 했습니다.
그 친구의 집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유명을 달리하기 전, 목숨을 끊을 만큼 괴롭다는 친구의 암시를 눈치채지 못했던 제 자신에게
크나 큰 아쉬움이 남곤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인생을 살도록 제 인생행로가 바뀐 이유의 49% 정도를 차지합니다.
코로나19 유행 직후에 "호구와 연인"이라는 제목에 등장하는 ㄲ을 처음 만났는데
두 번 만난 후 SNS에서 (글 초기에는 ’우울증‘이라 표현했지만 사실은)
자살시도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순간 오래 전에 잃어버린 친구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또 한 번 아는 사람이 보낸 신호를 인식하지 못하여 중간에 막지 못하면
남은 제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적극적으로 덤벼든 것이 (ㄲ의 표현에 의하면)
“더 이상 자살은 생각하지 않겠다”는 결과를 낳게 되어 아주 기쁩니다.
지금까지 그 ㄲ과는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의 모든 결정을 존중한다(I respect all of your decisions.)”
라 했고, ㄲ이 물어보지 않는 한 제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카페에서 회원님들이 “ㄲ이 연락이 와서 만나러 간다”는 표현을 쓰실 때마다
“기다려주는 이가 있으심이 부럽습니다”와 같은 댓글을 남기곤 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저도 기다려주는 이가 한 명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 친하고, 이성이라기보다 보호대상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이 ㄲ이 저를 기다려준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지만
두 번 만난 이후로는 하노이에 갈 때마다 ㄲ과 만나서 웃음꽃 피는 시간을 가지곤 합니다.
(글에도 등장하듯이 제 주변인들 몇몇은 이 ㄲ과 저의 관계를 알고 있습니다.
전부를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카페 덕분에 지나간 추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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