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도둑을 만난 경험(1)
오늘 아침에 무지개님께서 소매치기 글 올리신 걸 보고 제 경험 세 가지를 알려드리려 합니다.
저도 호텔방에 돈 두고 "Dont't disturb."라고 해 놓고 외출하고 오니 제 가방을 뒤져 달러를 훔쳐 간 경험이 있습니다.
그 후로 현금은 항상 제가 소지하고 다닙니다만 약간 엉뚱한 도둑을 만난 적 있어서 내용을 공유합니다.
오늘은 처음 만난 황당한 도둑 이야기입니다.
꽤 오래 전 처음으로 유럽에 가서 최종 목적지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영국에 갈 일이 생겼을 때 앞에 일주일 휴가를 내고 짧게 네덜란드(암스테르담, 헤이그),
벨기에(브뤼셀), 프랑스(파리)에서 놀다 출장을 위해 영국으로 갔습니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목적지인 버밍엄으로 가서 다음날부터 참여할 행사장에 가니
제가 예약한 숙소를 안내해 주면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영국이 처음이어서 대중교통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 때나 지금이나 걷는 걸 좋아하므로 첫 날 여유있을 때 걸어가면서
거리구경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숙소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지름길로 가면 행사장에서 숙소까지 20분 정도 걸린다는 건 다음 날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알았고,
길을 모르는 채 지도를 잘못 보고 가는 바람에 한 시간도 더 걸렸습니다.
때는 7월이어서 땀도 뻘뻘 흘렀습니다.
황당한 도둑을 만난 일은 30분 이상 걸으면서
'왜 이렇게 멀지?'라 생각하며 땀이 줄줄 흐르고 지쳐갈 때쯤 발생했습니다.
변두리에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었고, 자동차만 옆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제 앞 약 10미터에 키는 190이 훨씬 넘어 보이는 20대의 호리호리한 흑인
(동네 농구선수처럼 보이기도 했음)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걷고 있었고,
그 앞으로 약 10미턴 되는 곳에 백인 노인이 저처럼 가방을 끌며 천천히 걷고 있었습니다.
백인 노인의 걸음이 늦다 보니 거리가 흑인 청년과 백인 노인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저도 흑인과 10미터도 채 안 떨어져 있었으므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는데
그 때 백인 노인이 신호등에 걸려서 쉬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간 흑인은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잔뜩 꺼내 백인 노인에게 보여주면서
뭐라고 영어로 떠들었습니다.
저는 떨어져 있어서 제대로 못 들었는데 가까이 있는 백인도 못 들은 것 같았습니다.
그 노인이 잠시 머뭇거리다 흑인에게 뭐라고 할 때는
제가 거의 다가가서 세 명이 2미터 내의 거리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흑인 청년은 동전을 잔뜩 꺼내 든 채
"미안하지만 내가 동전을 드릴 테니 1파운드짜리 지폐로 바꿔 줄 수 있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알아들은 백인은 "Sure"라고 하더니
지갑을 꺼내 1파운드짜리 지폐를 하나 주었습니다.
그걸 손에 든 흑인 청년은 동전을 세지도 않은 채 1파운드 지폐를 호주머니에 넣더니
휘파람으로 노래를 부르듯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그냥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백인 노인은 '이게 무슨 일이야?'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는데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천천히 가던 대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10미터도 못 갔으므로 뛰어가면 2초도 안 걸리겠지만
우리는 모두 가방을 끌고 있었고
싸워봐야 이길 수 있는 덩치도 아니인 데다
큰 돈도 아니어서 그런지 백인 노인은 3초 정도 지나자 그냥 가던 길로 가 버렸습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 광경이 눈에 생생한데
제가 본 가장 째째한 도둑이기도 합니다.
그 때 만약 돌려달라고 뭐라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추측컨데 그 흑인이 큰소리 뻥 쳐서 기를 죽이려고 하거나
그냥 뛰어서 도망가면 잡을 수가 없을 상황이었습니다.
몸싸움을 해도 도저히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돈 꺼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고 있으며,
베트남 여행에 대해 익숙지 않을 때 택시 기사의 밑장뺴기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당시의 일이 떠오르곤 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나쁜 사람들도 많으니
항상 주의가 필요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하며 일요일 오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