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이혼을 막기 위한 기술
포항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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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16
멀어져야 가까워진다.
황혼 이혼을 막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방법은,
역설적으로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는 감정의 안전거리를 만들어준다.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예민해진다.
붙어 있을수록 싸우게 되고, 멀어질수록 애틋함이 생긴다.
이 아이러니를 이해하는 순간,
관계는 조금씩 유연해진다.
간섭은 관심이 아니다.
퇴직 후,
많은 이들이 ‘의미 있는 존재’로서 다시 자리 잡고 싶어 한다.
그래서 배우자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조언하려 한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자기 삶의 리듬과 방식을 가진 독립된 존재다.
치매 환자가 아니라면,
허튼짓을 할 리도 없다.
간섭은 애정이 아니라 통제로 느껴지고,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정은 관계를 서서히 부식시킨다.
우리는 서로를 믿고,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자율감이다.
의외일 수 있지만,
황혼 이혼의 불씨는 ‘소비 간섭’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
“왜 쓸데없는 데 돈을 쓰냐”는 말 한마디가 오래된 상처를 건드린다.
특히 여성에게는,
오랜 시간 감정노동을 해온 보상으로서의 소비가
‘존재 증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작은 소비에 민감해지기보다는,
‘왜 그렇게 썼는가’를 함께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결국, 돈보다 더 비싼 건
‘기분 상함’이고, 병든 마음이다.
함께하지 않음은 미덕이다.
우리는 종종 ‘부부는 함께 해야 한다’는 환상에 빠진다.
같은 취미, 같은 식사, 같은 모임…
그러나 ‘같이 한다고 친밀해지는 건’ 아니다.
각자의 세계가 있고, 각자의 리듬이 있다.
마음 써준다는 건, 노동이다.
여성들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감정노동의 누적이다.
30년 넘게 밥을 차리고, 청소하고,
말 걸고, 대화 시도하고, 무시당하고, 또 참고…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던 이 모든 행위가,
사실은 보이지 않는 정신적 수고였다.
이제는 이 마음 씀에 이름을 불러줘야 할 때다.
감정노동은 노동이다.
무시할수록 병이 되고,
병은 결국 이혼으로 돌아온다.
말은 흉기가 될 수도, 치유가 될 수도 있다.
“왜 그래?”가 아니라
“나는 이런 게 힘들어”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서운함을 따지는 대신,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오랜 사이일수록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는 착각은 위험하다.
오히려 말하지 않으면, 오해만 쌓인다.
장기적 관계일수록 비폭력 대화가 필요하다.
말투 하나, 표정 하나가 관계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
이제는 사랑보다 ‘동맹’이다.
젊은 시절의 부부가 열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면,
노년의 부부는 신뢰로 이어져야 한다.
관계는 ‘소유’가 아니라 ‘조율’이다.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시간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약점을 덮어주고
강점을 믿어주는 인생의 동맹자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멀해서
"우리는 서로를 놓아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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